광성보(廣城堡)


광성포대를 지나 조금 지나면 용두돈대가 나타난다. 쌓여진 성벽사이로 강화 앞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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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龍頭墩臺)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바닷물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서해바다가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고 하고 넓은 지역에서 바닷물이 들어오고 빠진다고 하지만 사실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처음 바닷물이 이동하는 속도를 보니 강물이 흐르는 것으로 착각이 든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안내문 참조한다.











아래는 용두돈대 안내문을 옮겨놓은 것이다.
용두돈대(龍頭墩臺)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이 돈대는 강화해협(江華海峽)을 지키던 천연 요새(要塞)로서 조선 숙종(朝鮮 肅宗) 5년(1679)에 축조되었다. 병인(丙寅).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치열한 포격전(砲擊戰)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1977년 성벽(城璧)을 복원하면서 강화 전적지(江華 戰蹟地) 정화기념비를 세웠다. 비의 전면(前面)의 글씨는 박정희 전대통령(朴正熙 前大統領)의 친필이며 후면의 비문은 이은상(李殷相)이 짓고 글씨는 김충현(金忠顯)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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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 안내문




성벽을 지나면서 몇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밖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나있는데 하나는 정면을 향하고, 하나는 아래를 향하여 구멍이 나왔다. 아마 이 구멍을 통해 적을 관찰하거나 총이나 화살을 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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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을 관측할 수 있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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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아래를 관측할 수 있는 형태


















성벽위에서 보는 해안가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전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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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에서 바라본 해안가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로 성벽을 따라 가면 끝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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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옆에 있는 '홍이포' 전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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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옆에 있는 홍이포 전시물




광성보 입구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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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에서 보는 광성보 입구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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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 사진출처 : 본인 사진
- 글 출처   : 용두돈대에 대한 안내문 원본 및 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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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廣城堡)


광성보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진들과 이야기 때문에 3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광성보를 찾았을때 마침 안개가 끼어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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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잠깐이면 다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 주변이 매우 넓어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살펴보아야만 했다.
광성보의 커다란 문을 지나 길을 따라가 보면 해안가로 둘려쌓여 보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싸움이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아름다웠다.

종 목  사적 제 227호(성)
면 적  면적 6.1ha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조선 후기 신미양요가 이곳에서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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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성벽

  항상 아이들에게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가르치면서 과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싸웠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왜 강화도에서 유난히 수많은 전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강화도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라 이곳의 중요성을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알고 수많은 포를 배치하고 진지를 구축했을 것이다.










아래는 광성보 안내도를 옮겨놓은 것이다.
광성보(廣城堡)

사적 제 227호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한 강호도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이다. 숙종 5년(1679)에 강호도의 국방시설을 확장할 때 이 보에 딸린 화도돈, 오두돈, 광성돈을 함께 축조하여 이를 소속시켰다. 신미양요 때(1871) 미국 군대와 48시간에 걸쳐 사투를 벌인 격전의 현장으로서 이 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와 350여명의 순국 영령을 기리기 위한 신미순의총을 1977년에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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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안내문




아래 동영상은 광성보 입구 풍경을 촬영한 것이다.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가면 신미양요 때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 장군과 59명을 기리기 위한 쌍충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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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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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충비


 
 
 
 
 
 
 
 
 
 
 




아래는 쌍충비 안내문를 옮겨놓은 것이다.
쌍충비(雙忠碑)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호군 불은면 덕성리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1823-1871) 외 59명의 순절비이다. 1기는 <광성파수순절비(廣城把守殉節碑)>로 비의 규모는 높이 168cm, 너비 62cm, 두께 25cm의 양면비로 1873년에 건립한 것이다. 다른 1기는 어재연과 어재순(1826-1871)순절비인데 폭이 높이 177cm, 너비 58cm, 두께 26cm의 양면비로 역시 1873년에 건립되었다.
   고종 때부터 제사를 지내왔으며, 1970년부터는 어재연의 후손들이 제사를 올려 충절의 유업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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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충비 안내문




쌍충비를 지나 용두돈대(龍頭墩臺)로 가는 길 중간에 광성포대가 나타나게 되는데 광성포대 역시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해안시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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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포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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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포대 내부

















아래는 광성포대 안내문를 옮겨놓은 것이다.
광 성 포 대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호군 불은면 덕성리 산123

   광성포대는 조선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국방 강화책으로 숙종(1675-1725)은 강화도내에 내성, 외성, 12진보, 53돈대 등을 축조하여 요새화를 이루었으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화력을 증가시키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고종 11년(1874년) 용진진, 광성진, 덕진진, 초지진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광성포대는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중앙포대는 길이 80m, 포좌의 크기 약 6m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1875년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항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 유적이 확인되어 복원정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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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포대 안내문




아래 동영상은 광성포대를 촬영한 것이다.




- 사진출처 : 본인 사진
- 글 출처   : 광성보에 대한 안내문, 쌍충비에 대한 안내문, 광성포대에 대한 안내문 원본 및 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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