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보(廣城堡)


광성보에 대한 마직막 포스트이다. 광성보 입구 바로 옆에서는 아래 그림과 같은 광성돈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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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돈대(廣城燉臺)

내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 자세한 설명을 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무튼 이곳은 당시 사용한 다양한 포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사용한 포들일 것이다.
흙을 쌓아 만든 벽사이 사이에는 이러한 포를 사용할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곳곳에 나 있다.









아래는 광성돈대 안내문을 옮겨놓은 것이다.
광성돈대(廣城燉臺)

  광성돈대는 광성보(廣城堡)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肅宗) 5년(1679) 함경도(咸鏡道)·황해도(黃海道)·강원도(江原道)의 승군(僧軍) 8,000명과 어영군(御營軍) 4,300명이 40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1977년 포좌(砲座) 4개소와 포 3문(門)이 복원 설치되었다.
  대포(大砲)는 홍이포(紅夷砲)라고도 하며사정거리 700m로서 포알은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나 포알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병자호란(丙子胡亂)에도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소포(小砲)는 사정거리 300m로서 포알은 대포와 같다. 대포는 조준이 안되나 소포는 조준이 된다.
  작은 것은 불랑기라 하며 프랑스군이 쓰던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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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돈대 안내문




아래는 광성돈대를 촬영한 것이다.







이 아래부터는 광성돈대에 전시된 포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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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불량기 모습

아래는 불량기 안내문을 옮겨놓은 것이다.

불랑기(佛狼機)
구경 : 26m/m
길이 : 78.2cm
중량 : 38kg   

  불랑기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포1문에 다섯 개에서 아홉개의 자포(子砲)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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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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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기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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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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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소포 모습

아래는 소포 안내문을 옮겨놓은 것이다.
소포(小砲)

구경 : 84m/m
길이 : 119cm
중량 : 171kg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砲口裝塡式火砲)로 사정거리는 300m이며 우리나라 재래식화포중 가장 발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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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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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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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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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 측면 1

아래는 홍이포에 관한 안내문을 옮긴 것이다.  
홍 이 포(紅夷砲)

구 경 : 100 mm 
길 이 : 215 cm 
중 량 : 1,800 kg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砲口裝塡式火砲)로 사정거리는 700m이며 조선 영조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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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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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 측면 2




 
 
 
 
 
 
 
 
 
 




- 사진출처 : 본인 사진
- 글 출처   : 광성돈대에 대한 안내문과 불랑기에 대한 안내문, 소포에 대한 안내문, 홍이포에 대한
                  안내문 원본 및 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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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廣城堡)


광성포대를 지나 조금 지나면 용두돈대가 나타난다. 쌓여진 성벽사이로 강화 앞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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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龍頭墩臺)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바닷물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서해바다가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고 하고 넓은 지역에서 바닷물이 들어오고 빠진다고 하지만 사실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처음 바닷물이 이동하는 속도를 보니 강물이 흐르는 것으로 착각이 든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안내문 참조한다.











아래는 용두돈대 안내문을 옮겨놓은 것이다.
용두돈대(龍頭墩臺)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이 돈대는 강화해협(江華海峽)을 지키던 천연 요새(要塞)로서 조선 숙종(朝鮮 肅宗) 5년(1679)에 축조되었다. 병인(丙寅).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치열한 포격전(砲擊戰)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1977년 성벽(城璧)을 복원하면서 강화 전적지(江華 戰蹟地) 정화기념비를 세웠다. 비의 전면(前面)의 글씨는 박정희 전대통령(朴正熙 前大統領)의 친필이며 후면의 비문은 이은상(李殷相)이 짓고 글씨는 김충현(金忠顯)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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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 안내문




성벽을 지나면서 몇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밖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나있는데 하나는 정면을 향하고, 하나는 아래를 향하여 구멍이 나왔다. 아마 이 구멍을 통해 적을 관찰하거나 총이나 화살을 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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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을 관측할 수 있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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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아래를 관측할 수 있는 형태


















성벽위에서 보는 해안가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전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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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에서 바라본 해안가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로 성벽을 따라 가면 끝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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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옆에 있는 '홍이포' 전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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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옆에 있는 홍이포 전시물




광성보 입구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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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에서 보는 광성보 입구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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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 사진출처 : 본인 사진
- 글 출처   : 용두돈대에 대한 안내문 원본 및 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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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섬이라 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넓고 볼거리도 많았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중요한 강화도에 도착해서 처음 가본 곳이 바로 초지진이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초지진 주변에 전에는 거의 바다였지만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로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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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바깥 모습

또한 초지진은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진들중에 일부이며 수많은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인상적인 것은 초지진 벽옆으로 소나무 2그루(옆의 사진에 보면 조금 보이는 소나무)가 있는데 포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치열한 싸움이 있었고 우리 조상들은 목숨을 걸고 지켜낸 곳이라 할 수 있다. 

종 목  사적 제225호(진)
면 적  면적 4,233㎡
소재지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아래는 초지진 안내도와 설명 자료를 옮겨놓은 것이다.

초지진(草芝鎭)
사적 제 225호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이곳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朝鮮) 효종(孝宗)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그 뒤 고종(高宗) 3년(1866) 10월 천주교(天主敎)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로즈의 극동함대(極東艦隊)와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通商)을 강요하여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및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雲楊號)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진(激戰地)이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 및 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하여 조선군은 사거리(射距離)도 짧고 정조준(正照準)도 잘 안되는 열세한 무기로 대항해 싸웠던 것이다. 특히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江華島修好條約)의 체결을 가져옴으로써 일본 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던 것이다.
   당시 이 진에는 병마첨절제사(兵馬簽節制使) 1일, 군관 11인, 군사 320인, 전선(戰船) 3척이 주둔하였었다.
   이 곳은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기에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1973년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大砲)를 진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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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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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설명













 



초진진 밖에서 보는 모습으로 사이 사이에 적을 관찰하거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뚫어 놓은 구멍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돌이 쌓이 모습으로 보아 제법 튼튼하게 쌓여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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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바깥 모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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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바깥 모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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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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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포 보관 장소



바로 위의 사진 건물 안에는 홍이포를 전시하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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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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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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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포 후면

아래는 홍이포에 관한 안내문을 옮긴 것이다.  
홍 이 포(紅夷砲)

구 경 : 100 mm 
길 이 : 215 cm 
중 량 : 1,800 kg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砲口裝塡式火砲)로 사정거리는 700m이며 조선 영조때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쉬운 점은 그 당시 우리가 사용하던 포탄이 폭발하지 못하는 종류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임진왜란때 적군의 배에 구멍을 내어 침몰시킬 수는 있었어도 그 당시 쇠로 만들었던 함선에는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 사진출처 : 본인 사진
- 글 출처   : 초지진에 대한 안내문과 홍이포에 대한 안내문 원본 및 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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